2010년 7월 10일 토요일

[딘/카스티엘] 카스티엘의 별 (08/17)


제목: Castiel's Star
작가: blackdoggy1
역자: meia (http://cafe.naver.com/mishacollins/4390)
페어링: 딘/카스티엘
등급: PG-13
주의: AU

1편  7편



현재

그 날 저녁, 딘은 첫 데이트를 하러 나가는 10대가 된 기분이었다. 입 냄새를 체크하고 머리카락을 매만진 후에 다시 입 냄새를 살피다가 차림새를 정리하고 도로 머리카락으로 돌아왔다. 카스티엘이라면 딘의 가장 엉망인 모습, 가장 멋진 모습, 그리고 그 외의 수많은 모습들을 봐왔을 텐데 이게 무슨 멍청한 짓인지. 싸운 후에 몸을 씻고, 반병쯤 마신 데킬라를 토하고, 벌거벗은 채로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 옛 시절들. 카스티엘이 보지 못한 딘 윈체스터의 모습이란 없었다. 그러니 머리카락이 조금 삐쳤다든지 셔츠에 얼룩이 졌다든지 하는 일들은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딘은 자신의 옷매무새를 꼼꼼히 체크했다.

며칠을 보내고 나니, 카스티엘과 저녁식사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초조해졌다. 현재로써 그들은 서로에게 있어 완벽한 타인이었다. 딘이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는다고 해도 사실이 그랬다. 캐스와 함께 있으면 언제나, 마치 그들이 아직도 연인사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늘 그랬듯 가깝게 느껴지곤 했다. 안타깝게도 카스티엘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지만. 그는 이런 일들, 그리고 딘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기에 딘은 상황이 변했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다. 별 효과가 없긴 했지만 말이다. 현실과 환상의 사이에 자리한 균열에 그의 불쌍할 정도로 고집스런 심장은 긴장감만 몇 배로 키워나갔다. 그래서 계속 이러고 있는 것이다. 입 냄새, 머리카락, 옷매무새, 입 냄새, 머리카락, 옷매무새.

“형? 늦지 않겠어?” 샘이 아래층에서 물어왔다.

젠장.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6시가 넘어있었다. 6시 반까진 그곳에 도착해야만 했다. 이 저녁식사에 늦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간 그는 복도에서 멈춰 서선 동생을 향해 돌아섰다.

“나 괜찮아 보여?” 딘이 걱정하며 물었다.

샘은 씩 웃었다. “긴장되나 보네?”

딘은 기분 나쁘단 시선을 던지며 내뱉었다. “좀 닥치시지.”

“농담이거든요.” 샘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은데. 하지만 늦지 않으려면 좀 서두르는 게 좋을걸. 선물은 뭘로 챙겼어?”

“선물?” 딘은 미간을 찌푸렸다.

샘은 그를 향해 얼굴을 찡그렸다. “어, 선물. 우린 성인이잖아. 빈손으로 가면 안 되지.”

아,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거 진짜 성가시구만! 그는 이미 늦은 상태였고, 이 와중에 파이나 뭐 그 놈의 선물로 적당할 법한 것도 없이 가야할 판이었다. 일반적인 저녁식사 데이트를 해본 적이 있어야 선물을 가져가야 한단 걸 알든지 말든지 하지.

“여기.” 샘은 와인 한 병을 건네며 말했다.

“너-”

샘은 알만 하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잊었을 것 같더라고. 집에 오는 길에 한 병 샀어.”

“고마워, 새미.” 딘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 번, 자신에게 저러한 멋진 남동생이 있단 사실이 고마워지는 순간이었다.

“뭐, 그냥 사심 없이 이러는 것만은 아냐. 나름대로 생각한 게 있었거든.” 샘이 인정하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난-” 샘은 어깨를 으쓱이곤 아래를 내려다보며 초조한 듯 꼼지락거렸다. “난 이게 잘 풀렸으면 해. 형과 캐스 말이야. 그렇게만 된다면 아마도. 알잖아, 그런 거.”

형은 다신 나를 떠나지 않겠지. 딘은 샘 대신 속으로 끝을 맺었다. 때때로 딘은 자신의 불안한 마음에만 매달려 샘 역시 불안해하고 있다는 걸 잊어버리곤 했다. 존이 떠나고 딘마저 떠났는데도 샘은 여전히 이곳에 남아 마지막 보루를 지키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나 딘 중 그 누구도 샘이 그렇게나 그들을 신경 써준 것에 대해 고마워하지 않았고, 자신들이 저 멀리 떨어져 있으니 샘이 그들을 그리워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딘은 자신과 카스티엘 사이에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샘을 위해 노력할 거라고 결심했었다. 그리고 그가 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어, 그래. 이게 잘 풀리기만 한다면 말이지. 누가 알겠어?” 딘은 미소를 지었다. “루퍼스가 나에게 일자리를 주겠다고 하기도 했고.”

“진짜?” 샘의 눈이 희망을 담고 크게 떠졌다. “형, 그거 정말 잘 됐다!”

“그렇지.” 딘은 최대한의 열성을 끌어 모았다. 이곳에서의 그의 미래는 아직도 불확실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샘을 실망시킬 필요는 없었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딘 스스로도 명확한 해결책을 낸 상태는 아니었다. “음, 난, 어- 가보는 게 낫겠다.”

“그래, 늦으면 안 되지.” 샘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 혼자 남아도 괜찮겠어?”

“그럼. 나랑 제스도 외식하러 나갈 거야.”

“그거 잘 됐네.” 딘은 샘의 어깨를 가볍게 쳤다. “나중에 보자, 동생.”

10분 후, 딘은 카스티엘의 집 앞에 도착했다. 카스티엘은 아직도 딘이 떠났던 그 때와 똑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물려주신 가게와는 달리, 집은 잘 돌보지 않는 모양이었다. 파손 상태가 심해서, 지금 당장 새로 페인트칠을 하고 새로운 덧문을 대고 잔디밭을 정성으로 돌봐야 할 것만 같았다. 보이는 광경에 딘은 마음이 불편해지고 말았다. 카스티엘은 언제나 세심한 편이었기 때문에, 이렇듯 집을 내버려둔다는 건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딘은 와인을 집어 들고 집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벨을 누르면서 딘은 집 번지마저 새로운 페인트칠이 시급하단 걸 눈치 챘다. 딘이 마지막으로 이곳에 서있었을 때만 해도, 번지 숫자는 어두운 회색빛 집에 대비되어 하얗게 빛났었다. 그 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신이 무슨 말을 내뱉고 어떻게 떠나버렸는지 등의 기억이 되살아나려고 하자 딘은 재빨리 그 기억들을 구석으로 밀쳐냈다.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고 딘은 카스티엘이 생각을 물리기라도 한 것인지 살짝 걱정되었다. 그러나 그 때 캐스의 발소리가 가까워졌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커다란 두 눈동자가 문틈 사이로 그를 내다보았다.

“안녕.” 딘을 위해 문을 활짝 열면서 캐스는 수줍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 딘은 와인 병을 들어 올리고는 초조하게 대답했다.

카스티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딘은 이게 그다지 좋은 브랜드의 것이 아니라서 그런가 걱정했지만 곧 카스티엘이 말했다. “난, 어- 와인이 참치 찜 냄비 요리와 어울리는지 잘 모르겠는데.” 캐스는 얼굴을 붉히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만든 거라곤 고작 참치 찜 냄비 요리뿐이야. 미안.”

“괜찮아.” 딘은 잽싸게 나서서 그를 안심시켰다. “난 참치 찜 냄비라면 환장하거든! 와인은 샘의 아이디어였어.”

“아.” 카스티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잠시 동안 서로를 보지 않으며 어색하게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었다.

맙소사, 이거 악몽 그 자체잖아. 딘은 갑작스레 도망치고픈 충동이 들었다. 캐스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멍청한 10대처럼 군 자신이 한심하기만 했다.

마침내 카스티엘에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딘의 손에서 와인 병을 뺏어 들어선 주방 쪽으로 돌아서며 어깨 너머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아.”

“나도.” 딘은 그에게 동의하며 그를 따라 주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딘은 카운터에 기대어 캐스가 코르크를 따고 두 개의 커다란 와인 잔에 와인을 따르는 것을 지켜보았다. 캐스는 잘 모르겠단 시선으로 딘을 보며 하나를 내밀었다. “너무 많은가?”

“어, 아니. 그 정도면 적당한 것 같아.” 딘은 옅게 씩 웃어보였다.

“그래.” 카스티엘은 코웃음을 치곤 그 커다란 와인 잔의 와인을 쭉 들이켰다. “음식은 조금 더 기다려야 될 것 같아. 그 동안, 어- 잘 모르겠네. 거실에 앉아 있을래?”

“그러지 뭐.” 딘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캐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좋았다. 지금 당장은 집에 들여 준 것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이었다. 어쩌면 지금부터는 카스티엘로 하여금 그를 괴롭게 하는 게 뭔지 말하도록 만들 수도 있을 터였다.

소파 위에 앉고 나서(캐스는 긴장한 듯 소파와 가장 멀리 떨어진 거실 저 반대편의 의자에 앉았다) 딘은 사소한 얘기로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까 전의 가게에서처럼 카스티엘의 기분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 줄 테니 진도를 내보기엔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동창생들과 마을 주민들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건 좋은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다른 이들에 대해서 얘기를 하다 보니 카스티엘의 자세도 좀 더 편한 것으로 바뀌었다. 안전하고 자신들과 관련된 일이 아닌데다가 말하기도 쉬웠다.

분위기는 점점 밝아졌고 캐스는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두 번째 채운 잔을 들고 돌아와 딘과 얼마 떨어지지도 않은 자리에 털썩 앉았다. 거실의 불은 흐릿했지만 딘은 한 눈에 카스티엘이 약간 취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캐스는 술이 약한 편이었으니까. 경계심이 낮춰졌으니 지금이야말로 그를 괴롭히는 것들에 대해 말을 꺼내볼 시간이었다. 물론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야 했다. 분위기가 밝아졌다고는 해도, 카스티엘의 눈에 어린 그림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캐스, 너만 괜찮다면 말하고 싶은 게 있는데.” 딘은 평범하게 시작했다가... 뭔가를 눈치 채자마자 재빨리 멈췄다. “뭔가가 타고 있어!”

“오, 젠장! 음식!” 캐스는 비명을 지르며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주방으로 향했다. 딘 역시 재빠르게 스토브를 향해 달려갔지만 음식을 구하기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주방용 장갑을 끼곤 바싹 탄 음식을 밖으로 꺼낸 후 음식을 식히기 위해 찬 물을 틀고 그것을 싱크대 안에 놓았다.

캐스는 딘의 옆에 서서 그와 함께 엉망이 된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은 서로를 향해 눈을 들어 올렸고 곧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했지, 나 요리 못한다고.”

딘은 씩 웃었다. “어, 그러네.”

“미안.” 캐스는 어깨를 으쓱했다. “피자라도 주문할까? 아니면... 핫도그도 있는데.”

“핫도그가 좋을 것 같아.” 딘은 여전히 쿡쿡대면서 말했다.

“좋아.” 캐스 역시 동의했다. “하지만 물은 네가 끓여줘야겠는데.”

“그쯤이야.”

그들은 침묵 속에서 식사를 했고 세 번째 와인이 더해졌다. 핫도그를 와인과 함께 먹는다는 것에 둘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식사가 끝나고 그릇을 싱크대 안에 넣고 나자, 카스티엘은 평소보다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딘은 그런 그의 팔꿈치를 잡고 그를 거실 쪽으로 이끌었다. 상황은 그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물론 기분이야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스를 이 정도로취하게 만들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이러면 진지한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그러나 소파에 앉고 나서 카스티엘이 가까이 다가오자 마냥 실망할 일만도 아니게 되었다. 정말로 가까이 다가왔는데... 마치 딘에게 비비적거리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 반시간 동안 180도 바뀐 태도에 딘은 평정을 가장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렇게나 기분이 좋은데.

오래된 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에 심장이 가파르게 뛰어댔다. 차 안에서 서로를 껴안고 있었던 늦은 밤, 카스티엘의 방 안에서 보냈던 여름날의 오후, 서로의 몸 위로 내리던 빛들과 달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던 카스티엘의 눈동자. 그렇게나 오래된 일들이건만 마치 어제 있었던 일 마냥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차마 잊을 수 없는, 졸업 3주 전에 서로로 인해 첫 경험을 했던 그 날 밤마저.

“캐스.” 딘은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지만 와인을 마신데다가 캐스가 스스로 접촉해오니 어려운 게 사실이었다. 카스티엘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몸을 부비길 계속했고 딘의 머리를 어질어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카스티엘이 덥석 입술을 덮치며 열정적인 키스를 시작하자 딘은 거의 정신을 잃을 뻔 했다. 너무도 오랜 시간이었다. 자신이 사랑해 마지않는 캐스를 이렇게 다시 만지기까지 너무도 오랜 시간을 흘려보냈다.

딘은 그저 이 행위에 빠져들고 싶었다. 그 사이 존재했던 거리와 시간을 무시하고 자신들이 아직도 18살이며 연인인 것처럼. 허나 그럴 순 없었다. 지난 며칠 간 카스티엘에 관한 수많은 걱정거리들을 직접 보고 들어왔던 자신이었다. 지금 이 순간 캐스가 진실로 원하는 것은 이런 게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딘에게, 아니면 그로 인해 정신이 팔린 것에, 그것도 아니면 그게 뭐든지 간에 화가 나있는 상태였다. 여태까지 딘을 대했던 그의 행동을 보면 그것만큼은 확실했다. 캐스가 술에 취했고 상대가 누구든 같이 잘 수 있는 기분이라고 해서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은, 둘 사이의 상처를 치료하는 일을 완전히 망쳐버릴 터였다. 그건 실수일 뿐이었다.

“캐스, 그만둬.” 딘은 조용히 말하며 겨우 카스티엘을 밀쳐냈다. 허나 몸과 마음이 그러지 말라고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다.

“뭐?” 캐스는 몸을 물리곤 나른하고 혼란스러운 시선으로 딘을 보며 웅얼거렸다. 술에 만취한 게 분명했다. 딘은 이걸 이용하고 싶진 않았다.

“네가 정말로 원하는 게 이런 건 아니잖아.” 딘은 그렇게 속삭이며 카스티엘의 까칠한 뺨을 어루만졌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것인지, 카스티엘의 분위기가 또 다시 극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뒤로 확 물러나며 매섭게 내뱉었다. “네가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어떻게 아는데?”

“캐스, 제발. 너-”

카스티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분노에 찬 듯 주먹을 쥐었다. “정말로 섹스하고 싶은 걸 수도 있잖아! 그런 생각은 안 들어? 난 섹스를 안 한지 너무 오래됐어, 딘. 절제따위... 그러니까 닥치고 섹스나 하잔 거잖아!”

딘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와 마주했다. “이게 바로 내가 말했던 거야! 이건- 이건 너답지 않다고! 나랑 한 방에 있는 것도 불편해하면서 섹스를 위해 날 이용하겠다고? 욕까지 써가면서 말야! 갑자기 왜 그렇게 된 거야? 이건 정말 너답지 않아!”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카스티엘은 얼굴을 팍 찌푸렸다. “더 이상은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을 텐데.”

“난 널 알아.” 딘은 침착하게 말하며 카스티엘을 붙잡으려고 했다. 그러나 카스티엘은 다시 한 번 그를 피해 물러섰다. “데콘 때문에 화가 난 것도 알고 있어... 그래서 우울해하고 그렇게 행동하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거잖아. 엘렌과 샘, 척이랑 모두가 말하길-”

아하.” 카스티엘은 눈을 가늘게 뜨며 팔짱을 끼곤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뭔가 또 한 소리 했구나. 그 옛날 좋았던 날들처럼 말이지.”

“아니.” 딘은 그 말에 담긴 의미를 깨닫곤 애원하듯 말했다. “아니, 그런 게 아냐, 캐스. 그런 게 아니라고! 사람들은 단지 널 걱정하는 것뿐이야. 나도 널 걱정하고 있고.”

카스티엘은 입을 꾹 다물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렇군.” 그리고는 역겹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덧붙였다. “왜 아직도 내가 문젯거리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네.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너랑 그들이랑 모두가 내가 괴짜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지옥에나 가버려. 날 내버려두란 말이야, 알았어? 난 혼자 있고 싶다고.”

그 말을 끝으로 돌아선 그는 어기적어기적 계단을 올라가 침실 안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아버렸다. 홀로 남겨진 딘은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



15년 전.

“딘, 여기 좀 와보겠니.” 칸막이 문 너머로 엘렌이 그를 불렀다. “얘기 좀 하자꾸나.”

카스티엘은 걱정스러운지 눈을 크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늦은 오후였고 데콘은 딘의 일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외출 중이었다. 딘과 캐스는 먼저 일어났던 일에서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며 캐스의 머스탱을 개조하고 있었다. 허나 핸드폰 벨소리가 울리자 둘은 하던 일을 멈췄다. 데콘의 전화일 게 분명했다. 그들은 그곳에 선 채로 들려올 말을 기다렸고, 늘 그랬듯 카스티엘은 딘의 손을 마주잡았다.

“곧 갈게요.” 딘은 그렇게 대답하곤 카스티엘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카스티엘의 손을 놔준 후 딘은 엘렌이 있는 곳으로 향했고 캐스도 그를 바짝 뒤따랐다.

둘이서 집 안으로 들어오자 엘렌이 말했다. “캐스, 저녁 먹어야 되니까 위층에 올라가서 손 씻고 오렴.”

“하지만-”

“카스티엘.” 그녀가 경고하듯 말했고 더 이상의 선택지는 없어보였다. 엘렌은 정이 많은 여자였고 카스티엘에게 있어 엄마나 다름없었지만, 데콘보다 엄격한 면이 있어서 쉽사리 꺾이는 법이 없었다. 그녀가 딘과 단 둘이서 얘기하고 싶어 한다면, 얘긴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다.

카스티엘은 한숨을 내쉬곤 딘을 돌아보았다. 딘은 그를 안심시키려는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캐스가 손을 닦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가자, 엘렌은 딘을 보며 이해한다는 미소를 지어주곤 그를 안쪽으로 이끌었다.

“털어놔보렴, 딘.”

혹여 말하고자 하는 게 나쁜 소식일까 미칠 듯 두렵긴 해도, 딘은 순순히 그녀의 말을 따랐다. 엘렌이나 데콘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진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문제로 여길 와선 안 되는 거였다. 게다가 그들은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었다. 일이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는다 해도, 딘은 그들이 노력해준 게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소파에 앉고 나서 엘렌은 그를 조사하듯 응시하다가 이내 말을 꺼냈다. “데콘의 전화였단다.”

딘은 고개를 끄덕이곤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럴 줄 알았어요.”

“글쎄다.” 엘렌은 한숨을 내쉬었다. “네 아버지에 대해 말하더구나. 술에서 깨고 나서 자신이 저지른 짓을 무척 후회한다고 하던데.”

딘은 코웃음을 쳤다. “네, 그러셨겠죠.”

“나도 안다, 알아.” 엘렌은 그의 손을 어루만졌다. “얘야, 내 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자였단다. 그러니까 이해할 수 있어.”

“정말로요?” 딘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가 왜 이런 말을 하는 진 알 수 없었지만, 꺼내기 쉬운 주제는 아니었기에 잠자코 있었다.

“그럼.” 엘렌이 말했다. “똑같은 개자식이라 이거지.”

“우리 아버지가 늘 폭력적이란 건 아니에요. 이번엔 그저.......”

“알고 있단다, 딘.” 엘렌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말고. 날 믿으렴, 데콘과 나는 이제껏 살아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으니까.”

딘은 제 신발을 내려다보며 머뭇머뭇 본론을 꺼냈다. “그래서, 어떻게 됐대요?”

“음, 둘이서 얘기를 좀 해본 모양이더구나. 술을 끊고 알코올중독모임에 나가고, 데콘의 부서에서 수시로 너희 집을 체크하게 하던지... 아니면 감옥에 가던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고 말이지.”

“그래서 아빠가.......”

“규칙을 따르기로 하셨다는구나. 자신도 이 일로 무척이나 두려웠던 모양이야. 해낼 수 있을 진 모르겠다만 어쨌든 변화를 원한다니까. 해낼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신할 수 있단다. 데콘이 또 말하길, 만약 너나 새미를 단 한 번이라도 다치게 할 시엔, 군말 없이 감옥에 넣어버릴 거라고 했다는구나. 알겠니, 딘? 데콘은 진심으로 말한 거야. 사실 너를 그곳으로 다시 돌려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만은. 그냥 네 아버지를 감옥에 처넣고 싶어 하는 것 같더구나. 이 정도 선에서 끝낸 것도 많이 봐준 걸 거야. 정말로 말이다. 하지만... 기회를 다시 주기로 마음을 다잡은 모양이다. 네 아버지가 감옥에 가고 나면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하는 점을 훨씬 더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그러니까 전, 저와 샘은-”

“그냥 그대로 있던 곳에 있으면 돼. 다만 약속해주렴. 만약 문제가 생길 시엔... 그 어떠한 문제라도 일어났을 땐 즉시 이곳으로 와야 된다. 알았지?”

“네, 아주머니.”

“그렇게 부르지 마렴, 얘야. 난 너를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넌 정말 정직한 아이고, 만약 새미나 네가 다시 한 번 위험에 빠질 시엔 기꺼이 우리 집으로 와줬으면 한단다.”

딘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확고하게 말했다. “그럴게요.”

엘렌은 납득한 것 같았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넌 혼자가 아니야, 딘. 너를 신경 써주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걸.”

딘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그렇게나 많은지는 잘 모르겠지만, 캐스와 그의 가족 등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자신의 곁에 있단 게 다행스럽게 느껴졌고, 애초에 자신 곁에 누가 있을까 의심했던 게 바보 같은 짓처럼 느껴졌다.

“고마워요.” 딘은 거의 울듯이 말했다.

그녀는 딘의 머리를 장난스레 헤집으며 잠시 그를 껴안아주었다. 후에 몸을 물리며 그녀는 다시 진지한 태도로 돌아왔다.

“말해야 할 게 또 있는 것 같구나.”

딘은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그녀가 아침에 본 광경에 대한 것일 터였다. 이건 좀 자신이 없었다. 자신뿐만 아니라 캐스도 포함된 일이니 말이다. 정말로 이에 대해 말하고 싶진 않았지만, 이미 그녀가 목격한 후이니 발뺌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저, 그녀가 이해해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닌, 카스티엘을 위해서라도.

“난 캐스를 사랑해요.” 딘은 그녀가 말하기도 전에 재빨리 선수를 쳤다.

“음, 당연히 그렇겠지.” 엘렌은 웃는 소릴 냈다. “그 정도 눈은 있단다.”

딘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뭐라고요? 그러니까 그 말은-”

“걱정 마렴. 너나 캐스나 잘 티는 안 나니까. 우리가 아는 거라곤 캐시와 네가... 친구 이상의 관계인 것처럼 보인단 것뿐이니까.”

딘은 한껏 표정을 드러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한 건 아니에요... 아시겠지만...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정말이에요.”

“그래.” 엘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다행이구나.”

딘은 콧잔등을 찌푸렸지만 엘렌이 한 수 빨랐다. “너희 둘 다 너무 어린 건 알지? 어른 간의 관계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기 위해선,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으니까 말이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딘은 얼굴을 붉히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우린 아무것도- 아시다시피-”

엘렌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알고는 있었지만 직접 듣고 나니 확실히 안심이 되는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조심하란 거란다. 여긴 작은 마을이고 모두가 호의적인 건 아닐 테니까. 사람들이 잔인해질 수도 있단 건 굳이 말 안 해도-”

“네.” 딘은 슬픈 마음으로 고개를 저었다. “굳이 말씀 안 하셔도 돼요.”

“네 스스로 알아서 잘 할 거라고 믿는다, 딘. 하지만 카스티엘은 너만큼 강하지 않아. 걔는 매우 수줍음을 잘 타고 예민한 아이지. 몸이 불편하기도 해서 누군가 그 아이를 상처 입히려 든다면 막아내기도 쉽지 않고. 이 점을 꼭 기억하고, 그 아일 잘 보살펴주렴.”

“엘렌.” 딘은 성심성의를 담아 대답했다. “난 언제나 캐스를 보살필 거예요. 언제나 캐스를 신경 써줄 거고요. 맹세할게요.”

대화가 끝나자 딘은 자신도 손을 씻기 위해 위층으로 올라갔다. 카스티엘은 새 셔츠를 입은 채 말끔해진 모습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하고 있던 것처럼 보였다. 말 한 마디 없이, 딘은 곧장 그에게로 다가가 허리에 팔을 두르고 꼭 끌어안았다. 잠시 동안 그는 그곳에 가만히 선 채로 비누와 타이드, 그리고 캐스의 향을 들이마셨다.

마침내 딘이 속삭였다. “잘 해결됐어. 데콘이 타협을 봤대... 언제나 그랬듯이 말이야.”

딘은 엘렌과 나눴던 또 다른 대화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캐스가 그 부분마저 알 필요는 없었다. 그건 캐스를 당황하게 만들 뿐이었다. 이제 캐스는 안도해선 행복한 마음으로 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좋은 분위기를 망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이렇게나 모든 게 잘 되었단 기분을 느낀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말이다.

딘은 언제나 캐스를 보살피겠다던 엘렌과의 약속을 떠올렸다. 진심이었다. 캐스를 무시하거나 그를 실망시킬 어떠한 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영원히 자신의 남자친구 곁을 떠나지 않으며 그를 돌볼 터였다.



9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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